세계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은 팬데믹 이후 시작된 인플레이션 파도 속에서 일제히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미국, 유럽, 영국,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물가 억제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며 긴축 기조를 강화해왔다. 이 흐름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라는 용어로 설명되며, 국가 간 금리정책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현상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글로벌 동조화 흐름 속에서도 단호하게 다른 길을 선택한 국가가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은행(BOJ)은 2022년 이후에도 초저금리를 고수했고, 마이너스 금리를 폐지한 시점조차 2024년이 되어서야 겨우 도달했다. 전 세계가 금리를 올릴 때, 일본은 동결하거나 오히려 수익률 곡선 제어 정책을 강화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러한 독자 노선은 세계 금융시장에 끊임없는 의문을 던져왔다.
왜 일본은 금리 동조화를 거부했는가? 그 선택은 일본 경제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그리고 금리 독립이라는 이름 아래 감수해야 했던 ‘대가’는 무엇인가? 본 글에서는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분석을 시도한다: 일본의 금리 정책 배경, 글로벌 동조화 흐름에서의 이탈, 환율과 투자시장에 미친 영향, 장기적으로 발생한 경제적 비용.
디플레이션과의 전쟁, 그리고 금리 인하의 집착
일본은 1990년대 초반 자산 버블 붕괴 이후 장기간의 디플레이션 늪에 빠졌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소비심리는 위축됐고, 기업은 투자를 미루며 성장 동력이 점점 약화되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1999년 세계 최초로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했고, 2016년에는 본격적인 마이너스 금리 체제로 전환했다.
이러한 정책은 단순한 경기부양 수단이 아니라, 경제 생존 전략의 일환이었다. 일본의 고령화, 저출산, 소비 정체라는 구조적 문제는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일본은행은 지속적인 양적완화와 국채 매입으로 시장금리를 억제했고, 수익률 곡선 제어(YCC)를 통해 장기금리도 일정 수준 이하로 관리했다. 이는 글로벌 중앙은행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히 이례적인 정책 기조였다.
즉, 일본의 저금리 정책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20년 넘게 이어진 거시경제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다른 나라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동안, 일본은 여전히 ‘물가를 올리는 데 실패한 유일한 나라’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글로벌 동조화 흐름을 거부한 정책적 고립
2022년부터 시작된 미국과 유럽의 기준금리 급등 속에서 일본은행은 전 세계적인 통화 긴축 흐름에 동조하지 않았다. 제롬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국민경제의 적’으로 규정하며 공격적인 인상을 추진할 때, 일본은행은 오히려 10년물 국채 수익률 상단을 방어하기 위해 추가 매입에 나섰다.
이러한 비동조화는 국제 금융시장에 정책적 고립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일본은 다른 국가들과 달리 ‘글로벌 기준금리’ 질서에 협조하지 않았고, 이는 통화간 금리 차 확대로 이어졌다. 특히 한미 금리차가 5%를 넘는 상황에서, 엔화는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며 급격한 평가절하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환율 방어를 위한 외환시장 개입이라는 비통화정책 수단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는 정책의 신뢰도에 악영향을 주었다.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의 금리결정이 정치적 고려 또는 이례적인 경로에 묶여 있다고 해석했고, 투자자들은 일본을 통화정책상 ‘이탈자’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금리 독립은 정책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었지만, 그 대가로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 내에서의 신뢰 상실과 전략적 고립을 감수해야 했다.
환율 급등과 투자시장 왜곡 – 수치로 드러난 대가
일본의 독자 노선은 빠르게 엔화 가치 급락으로 이어졌다. 2022년 말 기준, 엔/달러 환율은 150엔을 돌파했고, 이는 1990년대 이후 최악의 엔저 현상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수출기업에는 호재였지만, 에너지와 식량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일본 경제 전반에는 물가 상승이라는 역효과를 안겼다.
이와 동시에, 글로벌 투자자들은 일본 자산을 보유할 유인이 줄어들었다.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이거나 거의 0에 가까운 채권을 보유하기보다는, 더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미국·유럽 채권으로 자금을 이동시켰다. 일본 국채시장은 일본은행이 대부분을 매입함에 따라 거의 기능을 상실했고, 유동성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또한 일본 국내의 금융기관들도 구조적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장기금리까지 억제된 환경에서는 은행과 보험사의 마진 구조가 악화되고, 기업은 실질 투자 대신 유동성 확보에 집중하게 되었다. 이처럼 금리 독립이라는 선택은 자산시장과 실물경제 모두에 왜곡된 시그널을 제공하며 부작용을 양산했다.
통화정책 정상화의 역설 – 시기의 문제, 구조의 문제
일본은행은 2024년에야 겨우 마이너스 금리를 철회했지만, 여전히 기준금리는 0.1% 수준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일본이 본격적인 금리 인상 사이클에 돌입할지 주목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물가 상승이 지속 가능한 구조인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정상화의 길이 열렸지만, 오히려 지금이 정책 딜레마가 가장 심화된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만약 일본이 금리를 인상하면, 정부 부채의 이자 부담은 급격히 늘어난다. 2024년 기준 일본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260%를 넘는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이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국가재정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저금리 환경에 길들여진 소비자와 기업, 금융기관은 금리 인상에 대한 내성이 약하다. 이처럼 일본은 금리 인상을 할 수 있는 정치·재정·사회적 여건이 동시에 미흡하며, 이는 통화정책 정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금리 독립은 지속 가능한가? 아니면 잠정적 예외인가? 일본의 통화정책은 이제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구조적 생존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독립의 대가, 혹은 고립의 대가
일본은행이 글로벌 금리 동조화 흐름을 거부하며 유지해온 독자 노선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30년 이상 누적된 거시경제의 결과물이다. 일본은 금리를 인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금리를 인상할 수 없는 구조를 가졌던 국가였다. 그러나 그 선택의 대가는 분명 존재했다.
환율 급등, 투자자 이탈, 자산시장 왜곡, 금융기관 수익성 저하, 국제적 정책 고립. 이 모든 현상은 ‘통화 독립’이라는 이름 아래 발생한 결과였다. 글로벌 기준금리라는 세계적 질서가 작동하는 가운데, 일본은 자신의 길을 택했지만, 그 길은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앞으로 일본이 진정한 정책 정상화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금리 인상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인구 구조 개혁, 재정 안정화, 통화 신뢰 회복 등 총체적 경제 체질 개선을 포함해야 한다. 금리를 올릴 수 있는 경제, 통화당국의 신호를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경제가 되어야만, 진정한 독립은 의미를 갖는다.
일본의 금리 독립은 어쩌면 우리가 통화정책의 자유란 무엇인가를 되묻는 계기다. 자유는 조건 없는 권리가 아니라, 그에 따르는 책임과 대가까지 감수할 수 있을 때 실현된다. 일본은 지금, 그 대가를 온몸으로 견디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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