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와 글로벌 기준금리의 상관관계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리는 단순한 경제지표가 아니라, 각 가정의 미래와 직결되는 숫자가 되었다. 금리는 소비의 타이밍을 바꾸고, 대출의 문턱을 높이며, 자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선이 된다. 특히 가계부채가 높은 나라일수록, 금리 변화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생활의 구조를 흔드는 ‘충격’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전 세계는 일정한 방향으로 금리를 움직여 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필두로,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중앙은행(BOE), 한국은행 등 주요국의 중앙은행들은 동조화된 금리 정책을 펼쳤고, 이 흐름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이 글에서는 바로 그 글로벌 금리의 방향성과 가계부채의 구조 간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본다. 금리가 오르면 왜 가계의 취약성은 드러나는지, 그리고 세계적 금리 흐름이 어떻게 한 국가의 가계 재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룬다.
저금리 동조화가 만든 빚의 팽창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는 ‘제로금리’라는 이례적인 시기를 경험했다. 미국이 가장 먼저 금리를 인하하며 시작된 이 흐름은 유럽, 일본, 한국 등 주요국이 따라가는 형태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국 중앙은행은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파격적으로 낮추었고, 대출이 쉬워진 가계는 이전보다 더 많은 부채를 감당하게 되었다.
한국 역시 이러한 금리 동조화의 수혜 혹은 영향 아래 있었다. 한국은행이 미국의 금리 인하와 보조를 맞추면서 2020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 0.5% 시대를 열었고, 이에 따라 은행 대출금리는 1%대까지 떨어졌다. 이런 환경에서 다수의 가계는 부동산 매입, 주식 투자, 생활비 마련 등의 목적으로 대출을 늘려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저금리는 영원할 것’이라는 환상이 시장에 만연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가계가 고정금리보다 변동금리를 택했고, 일정 수준 이상의 레버리지를 감수하며 빚을 키웠다. 이 모든 배경에는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라는 흐름이 존재했고, 그 흐름은 가계의 부채 구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글로벌 금리 인상기, 가계의 내구성은 깨지기 시작했다
2022년을 기점으로 전 세계는 급격한 금리 인상기로 접어들었다. 미국이 급격하게 기준금리를 올리자, 자본 유출을 방지해야 했던 한국은행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은 ‘뒤따라 오르는 금리 인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계에 있어서는 빚을 ‘갖고 있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되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특히 한국처럼 가계부채 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는 나라에서는 금리의 상승은 곧 실질 소득 감소를 의미한다. 변동금리 대출을 선택했던 수많은 가정은 이자 부담의 급증을 체감했고, 일부는 대출 원리금 상환을 연기하거나 신용대출로 갈아타며 ‘부채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금리가 글로벌 차원에서 동시에 오르면, 국내 가계는 이 흐름에 역행할 수 없다. 정부가 금리를 낮추면 자본 유출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고,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될 수 있다. 따라서 금리를 통제하는 수단은 제한적이며, 가계는 결국 글로벌 금리 구조의 최종 수혜자이자 피해자가 된다. 이 상황에서 취약층, 청년층, 자영업자 가구는 가장 먼저 균열을 경험하게 된다.
통화정책 동조화와 가계대출 상품의 구조 변화
글로벌 금리 동조화는 단지 ‘금리’만이 아니라, 금리와 연동된 금융상품의 구조 변화를 동반한다. 특히 가계대출 상품은 이러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고정금리의 비중 감소, 변동금리 상품의 확대, 대출 승인 요건 강화 등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동시에 올리는 시기에는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위험 자산에 대한 평가 기준을 강화하게 된다. 이는 한국의 은행에도 영향을 미치며, 금융감독기관은 이에 발맞추어 가계대출 총량 규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한다. 그 결과, 가계는 단순히 대출 이자뿐 아니라 대출 자체의 문턱을 경험하게 된다.
동시에 변동금리 대출은 글로벌 금리 흐름에 민감하게 연동되기 때문에, 국제 금리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이자율이 빠르게 변동된다. 이 구조는 가계의 재무계획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장기적 상환 계획을 어렵게 한다. 또한 이자 상환을 위한 소비 축소가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불러오기도 한다.
국가 간 금리차와 외화부채의 이중 리스크
글로벌 금리 동조화가 언제나 완벽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국가 간 금리 격차가 발생하고, 이 격차는 국내 금융시장에 ‘금리 차익 투자’ 혹은 ‘외화대출 유인’이라는 방식으로 반영된다. 일부 가계나 중소기업은 더 낮은 금리를 좇아 외화부채를 선택하기도 하는데, 이는 금리 외에도 환율 리스크라는 새로운 변수에 노출되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금리가 상승하는 반면 한국의 금리는 상대적으로 더디게 오를 경우, 달러화 강세가 지속되며 원화 약세가 심화된다. 이 시점에 외화로 빚을 진 가계나 기업은 원금 상환 자체가 어려워지는 구조적 위기를 맞게 된다. 또한 해외 자본의 유출이 한국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위축시키며, 다시 국내 가계 대출 금리의 상승을 부추기게 된다.
이러한 복합적 구조는 가계가 단지 한 나라의 정책만을 고려해서는 안전한 재정 운영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글로벌 금리 구조, 환율 전망, 대외 의존도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보 격차에 노출된 일반 가계는 더욱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가계부채는 국내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리스크’다
가계부채는 더 이상 한 국가의 통화정책이나 금융기관의 판단만으로 관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기준금리의 동조화는 자본 흐름, 금융상품 구조, 소비 심리, 대출 전략 등 모든 면에서 가계의 선택지를 좁히고 있으며, 특히 부채가 많은 가계일수록 이 동조화 흐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글로벌 금리 인상은 어느 한 나라만의 결정이 아니며, 이에 따라 발생하는 이자 부담 역시 글로벌 차원의 공조 속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그 부담을 실제로 감당하는 것은 개별 가계이며, 특히 정보력과 자산이 부족한 계층일수록 더 빠르고 깊게 흔들린다.
이제 정책은 ‘가계부채 관리’라는 용어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정책은 글로벌 흐름을 읽어야 하며, 가계가 금리 상승기의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변동금리 규제 강화, 고정금리 상품 확대, 금융 리터러시 교육 강화, 금리와 연동된 안전망 구축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금리 동조화 시대, 가계는 더 이상 단독 플레이어가 아니다. 가계는 국제 자본의 흐름과 금융정책의 파고 속에 떠 있는 ‘작은 경제 단위’이며, 이 단위들이 모여 국가 경제의 체력을 구성한다. 따라서 가계의 회복력은 곧 국가의 회복력이다. 그리고 그 회복력은, 단단한 이해와 선제적 대응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