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준금리 인상이 멈추는 시점, 어떤 국가가 먼저 움직일까?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기준금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경제의 흐름을 바꾸는 트리거다. 특히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란 개념이 통화정책의 표준처럼 굳어진 지난 10여 년 동안, 각국은 중앙은행의 금리 조정 시점조차 서로 눈치 보는 구조 속에서 움직였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유럽중앙은행도 따르고, 한국은행과 같은 중견국도 그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는 구도가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2024년 후반부터 전 세계는 인플레이션이 점차 둔화되고, 경기 침체의 경고음이 커지는 전환 국면에 들어섰다. 금리를 올릴 동력이 약해지고, 반대로 인하의 필요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하나다. “과연 어느 나라가 금리 인상을 가장 먼저 멈출 것인가?”
이 글은 글로벌 금리 동조화의 구조를 토대로, 어떤 국가가 선제적으로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인하로 전환할지를 네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각 문단은 사례 중심의 접근을 통해 통화정책의 ‘우선 멈춤’ 가능성을 점검한다.
경제 구조의 취약성 – 신흥국의 선제 중단 가능성
기준금리 인상이 가장 먼저 멈출 가능성이 큰 국가는 경제 체력상 고금리를 감당하기 어려운 신흥국일 수 있다. 특히 국내 소비 위축, 가계부채 부담, 환율 불안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국가는 금리 인상의 지속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실제 사례로 칠레 중앙은행은 2023년 하반기부터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먼저 금리 인하로 전환한 국가다. 칠레는 미국보다 빠르게 금리를 인상한 바 있으나, 급속한 경기 냉각과 물가 안정 신호를 포착하고 11.25%였던 기준금리를 10.25%로 조기 인하했다. 칠레의 선택은 IMF나 미 연준의 기조와 달랐지만, 자국 내 경제 체력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이처럼 신흥국은 외화 유출의 압력을 감수하더라도 내부 경제 방어를 위해 금리 인상을 먼저 중단할 수 있는 국가군이다. 특히 국내 소비 기반이 약하고 고정금리 부채 비중이 높은 나라는, 글로벌 동조화에서 벗어나 먼저 행동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정치·사회적 압력 – 민주주의 국가의 조기 완화 가능성
두 번째로 중요한 요소는 정치 체제와 국민 여론의 반응성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갖춘 국가에서는 고금리로 인한 서민층 고통이 여론으로 번지면서 중앙은행의 정책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이로 인해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명목상 유지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리스크에 반응하는 완화적 선택이 나타날 수 있다.
2022~2023년의 한국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한국은 미국보다 금리를 천천히 인상했으며, 고금리 유지에 대한 여론 반발이 커지자 2023년 중반부터 기준금리를 동결 상태로 유지하고, 2024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둔화되자 일부 위원들이 인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특히 가계부채가 GDP 대비 100%를 초과하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 지속은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었다.
이런 구조를 고려하면, 선거를 앞둔 국가 혹은 사회적 취약계층이 많은 국가는 먼저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심지어 금리 인하로 선회할 가능성이 높다. 중앙은행이 독립되어 있더라도, 금융당국과 정부의 비공식적 신호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책적 여유와 선제적 판단 – 호주의 과감한 행보
금리 인상을 멈추는 또 다른 유형은, 정책적 여유와 데이터 중심 판단을 동시에 갖춘 중견국가에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국가들은 대체로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신뢰도가 높고, 중앙은행이 민감하게 물가·고용 데이터를 분석하여 기계적 동조화 대신 선제적 방향 전환을 택할 수 있다.
2023년 말의 호주 중앙은행(RBA)이 대표적 사례다. RBA는 미국 연준이 금리 인상을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호주의 내수 둔화, 부동산 가격 조정, 실업률 정체 등을 근거로 금리 인상을 중단했다. RBA는 ‘다음 금리 조정은 하향일 가능성이 크다’는 발언으로 시장에 신호를 주었고,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 통화정책의 독립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물가 상승률이 안정권에 들어서고, 경제 데이터가 둔화 조짐을 보이는 경우, 정책 신뢰도가 높은 나라들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 흐름에서 이탈하며 먼저 움직일 수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환율 압박을 유발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기 방어에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국제 정치 및 외환 준비 여건 – 중동·아시아의 변수 국가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는 국제 정치적 여건과 외환 준비 자산이다. 특정 국가는 미국의 금리 기조와 무관하게, 자국 외환보유액이 풍부하거나 원자재 수출국으로서의 자금력이 뒷받침된다면, 먼저 금리 인상 종료 또는 인하를 시도할 여지를 갖게 된다.
예시로 사우디아라비아는 고유가로 인해 외환 보유액이 급증한 가운데, 자국 투자 촉진과 산업 다변화를 위해 낮은 금리를 유지하고자 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때에도 사우디는 상당 기간 이를 따르지 않고 자국 상황에 맞춘 조정을 시도했다. 물론 사우디는 달러 페그제를 유지하고 있어 완전한 금리 독립은 어렵지만, 외환 유입 여건이 좋은 국가는 동조화 흐름을 무시하고 행동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통화제도를 특수하게 운영하는 도시국가 역시, 글로벌 금리 사이클과는 다른 조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환율 중심의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경우, 금리 자체보다는 환율 안정화가 우선순위가 되므로, 글로벌 동조화 흐름에 반드시 얽매일 필요가 없다.
기준금리 인상 종료, 누가 먼저 스타트를 끊을 것인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가 강력하게 작동했던 시기는, 위기 극복의 공동 대응이 필요한 특수한 환경이었다. 하지만 물가가 안정되고, 각국의 경기 상황이 제각각으로 변모하는 현재는 ‘다양성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오히려 동조화보다는 차별화된 정책 대응이 필요하며, 어떤 나라가 먼저 금리 인상 종료를 선언하고 방향 전환을 감행하는가가 글로벌 시장의 ‘심리적 기준점’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흥국의 취약성, 정치적 압력, 정책 신뢰도, 외환 여건은 모두 선제 조정의 조건이 될 수 있다.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 구조 속에서도, 각국은 자국의 고유한 데이터와 정치·사회·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차별화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결국 누가 먼저 움직일지는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 위험을 감내하고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판단력의 경쟁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그 판단의 지점에서 새로운 질서의 방향을 읽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