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준금리와 스테이블 코인과의 관계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은 중앙은행이 설정하는 기준금리를 통해 경제의 온도를 조절해 왔다면, 디지털 화폐 시대는 기존의 금리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 중심에는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 이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는 암호화폐로, 주로 미국 달러나 유로 등 법정통화에 고정되어 있으며, 탈중앙화 시스템 안에서 빠르고 저렴한 거래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이 단순한 송금 수단을 넘어 대규모 결제, 자산 보유, 심지어는 대출 담보 자산으로까지 활용되면서, 글로벌 기준금리와의 상호작용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중앙은행은 금리로 경제를 조절하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자산이 금리 정책의 영향을 우회하거나 무력화시키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금리 차익거래의 새로운 플랫폼, 스테이블 코인
글로벌 기준금리의 상승 혹은 하락은 전통적으로 외환시장과 자본시장에 영향을 미쳐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스테이블 코인이 금리 차익을 노리는 새로운 거래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탈중앙화 거래소(DEX)나 디파이(DeFi) 플랫폼에서 고정된 가치로 예치되며, 보통 연 5%~20%의 이자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이때 글로벌 기준금리와의 괴리는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전략적 판단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미국 연준이 2022년~2023년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했을 때, 일부 투자자들은 달러화 기반 스테이블 코인을 확보한 후, 디파이 플랫폼에서 10% 이상의 수익을 얻는 구조를 활용했다. 이는 전통 은행의 예금금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실제로 자금이 은행에서 빠져나와 디지털 자산 생태계로 이동하는 현상이 포착되었다.
이처럼 스테이블 코인은 글로벌 기준금리의 변화에 반응하는 새로운 투자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기존의 금리 정책 효과를 우회하거나 왜곡시키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금리 정책 전파력의 약화와 스테이블 코인의 부상
전통적인 금리 정책은 시중 유동성을 조절함으로써 가계 소비, 기업 투자, 자산 가격 등을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이 실물경제와 점차 연결되면서 기준금리의 실질적인 파급력이 약화하는 경향이 포착되고 있다. 특히 스테이블 코인이 ‘디지털 달러’와 같은 성격을 띠기 시작하면서, 자국 통화의 위상과 통화정책 전달력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다. 두 국가는 고물가와 고금리 환경 속에서 자국 통화의 신뢰가 약해졌고, 이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 USDT(테더)나 USDC(서클)의 유통이 급증했다. 특히 2023년에는 나이지리아 내 일부 온라인 거래소에서 나이라(Naira) 대신 스테이블 코인으로 부동산 계약금이 지불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18%까지 인상했음에도 물가를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외화기반 디지털 화폐가 실물경제를 지배하기 시작한 구조적 역전 현상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스테이블 코인이 단순한 암호화폐의 한 형태를 넘어, 통화정책의 전파 경로 자체를 변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리와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하나
스테이블 코인은 일반적으로 달러와 1:1로 고정되어 있는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글로벌 기준금리 변동에 맞춰 이자율을 반영하는 ‘이자형 스테이블 코인(Interest-bearing Stablecoin)’ 이 등장하고 있다. 이는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바꾸면,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서도 즉각적인 반응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구조를 만든다.
대표적인 사례는 Ondo Finance와 같은 플랫폼에서 발행된 ‘USY’와 ‘OUSG’와 같은 스테이블 코인이다. 이 자산들은 미국 국채에 연동되어 있고, 연준의 금리 인상 시 실질 수익률이 올라간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은행 예금이 아니라,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연 4% 이상의 안정 수익을 얻는 루트를 확보할 수 있다. 이는 전통 금융과 블록체인이 금리 기반 자산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뜻한다.
이자형 스테이블 코인의 확산은 글로벌 기준금리와 블록체인 자산 간의 직접적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중앙은행의 정책 대응 시간에 비해 훨씬 빠른 반응을 요구하는 시장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결과, 중앙은행의 결정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가격에 반영되거나, 때로는 탈중앙화 생태계가 기준금리 변동을 선반영하는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스테이블 코인이 촉발하는 통화정책의 탈주권화
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스테이블 코인은 통화의 국경을 허물고 있다. 중앙은행은 자국 내 통화량과 금리를 조정하여 경기를 조절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의 확산은 이러한 통화정책의 ‘탈주권화(De-sovereignization)’를 야기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의 논리에도 새로운 충격을 준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 국가 중 일부는 미국과 금리 동조화를 따르지 않아도, 자국 내 USDT 기반 스테이블 코인 경제가 성장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이는 ‘기준금리를 낮춰야만 자본이 유입된다’는 고전적 통념을 뒤흔들고 있다. 오히려 디지털 자산 인프라가 잘 구축된 국가에서는, 법정 기준금리와 무관하게 자본 유입이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2024년에는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자체적인 디지털 통화 인프라와 스테이블 코인 허가제도를 정비하면서, 글로벌 금리 정책과 일정 부분 독립된 금융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는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가 디지털 화폐 시대에는 더 이상 필연이 아니라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새로운 금리 생태계에서의 정책 진화가 필요하다
글로벌 기준금리와 스테이블 코인의 관계는 단순한 금융 현상을 넘어, 통화주권과 정책 효과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기준금리라는 전통적인 도구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스테이블 코인이라는 새로운 통화수단이 이를 보완하거나 심지어 대체할 가능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더 이상 오직 법정화폐만을 대상으로 금리 정책을 설계할 수 없다. 스테이블 코인을 고려한 금융감독, 금리 결정, 자본 규제 등 다층적인 정책 진화가 필요하다. 디지털 화폐 환경에서는 중앙은행 간의 금리 동조화뿐 아니라, 디지털 자산 생태계와의 연계 또는 균형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기준금리’라는 개념 자체가 디지털화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한 CBDC와 민간 스테이블 코인이 혼재하는 세계에서, 금리의 기능은 단순히 조절하는 도구가 아니라, 정책 신호이자 금융 생태계의 참여 조건이 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글로벌 기준금리와 스테이블 코인의 관계는 이제 막 본격적인 시대를 향해 접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