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준금리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 구조 속 신흥국의 통화정책 시나리오

somillion-news 2025. 7. 11. 04:29

기준금리는 통화정책의 중심축이다. 금리 인상기나 인하기에는 방향성이 뚜렷하기 때문에 정책 판단에 명확한 근거가 존재한다. 그러나 기준금리 동결 국면에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책 기조가 ‘정지’ 상태에 놓이는 시기야말로, 경제 주체들이 가장 혼란스러워하는 시점이다. 특히 신흥국의 경우, 내부 경제 상황과 외부 자본 흐름 사이에서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2024년 후반 이후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시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고물가 진정세를 이유로 금리를 유지하는 방침을 밝혔고, 유럽중앙은행 역시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사이에서 금리 조정을 보류하고 있다.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는 방향성보다 ‘정지의 동조’로 바뀐 상황이다.

이처럼 글로벌 금리가 멈춘 가운데, 신흥국들은 어떤 통화정책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할까? 


글로벌 기준 금리의 멈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책 동결 유지 시나리오 – ‘위험 회피형’ 접근

가장 보수적인 시나리오는 기준금리를 동결한 채 현 상태를 유지하는 전략이다. 이는 정책 안정성을 중시하고 외환시장 변동에 민감한 국가들이 택하는 방안으로, 글로벌 금리 동조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모습이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중앙은행(BI)는 2024년 중반 이후 기준금리를 6%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미국 금리와 연동된 외국인 자금 유출 우려가 크기 때문에, 섣부른 금리 인하를 시도하지 않고 ‘시장과의 조화’를 택했다. 이는 환율 안정과 외채 이자 부담을 고려한 전략적 동결이다.

이러한 ‘위험 회피형’ 전략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에 순응하면서 불확실성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이 접근은 내부 경기 둔화와 소비 위축을 외면한다는 단점을 가진다. 실물경제에 대한 자극이 부족할 경우, 고용 회복이나 소비 심리 반등에 한계가 발생할 수 있기때문이다.


선제적 금리 인하 시나리오 – ‘내수 부양형’ 접근

두 번째 시나리오는 글로벌 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금리 인하를 단행하는 적극적 대응 전략이다. 이는 내수 경기 회복을 급선무로 두는 국가들이 선택하는 방식으로, 금리 동조화에서 벗어나는 조정이다.

2023년 말부터 칠레 중앙은행은 선제적으로 금리를 낮추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금리는 고공행진 중이었지만, 칠레는 내수 침체와 소비 위축, 실업률 상승 등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연속 인하했고, 그 결과 경제 성장률은 점진적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이는 글로벌 흐름보다 자국 상황에 기반한 정책 판단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 시나리오는 경기 자극에 효과적이나, 단점도 분명하다. 글로벌 금리 수준보다 낮은 국내 금리는 자본 유출 및 환율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외화 부채가 많은 신흥국은 통화가치 하락이 곧 금융 시스템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리 동결 유지 + 통화수단 보완 시나리오 – ‘복합 조절형’ 전략

세 번째 시나리오는 금리를 동결하되, 통화 외적 수단을 병행하여 경기 관리에 나서는 방식이다. 이는 금리를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동성 조절이나 재정지출 조정, 신용 정책 등을 활용하여 통화정책 효과를 대체하는 전략이다.

필리핀 중앙은행(BSP)은 2024년 들어 기준금리를 유지하면서, 중소기업 대출 확대와 외환시장 개입을 동시에 추진하였다. 특히 외국인 투자 유입을 유도하기 위한 세제 인센티브 조정과 금융규제 완화 조치를 병행하며, 실질적인 경기부양을 도모했다. 이는 금리를 건드리지 않고도 시장 안정성과 경제 자극을 동시에 추구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 전략은 단기적인 정책 유연성은 확보하지만, 정책 신뢰성과 투명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금리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수단으로 시장을 조절하는 방식은 종종 중앙은행의 불명확한 의도 해석을 초래하며, 외국인 투자자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


점진적 금리 인상 재개 시나리오 – ‘방어적 강화형’ 전략

마지막 시나리오는 글로벌 금리가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이 자체적으로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방어적 조정 전략이다. 이는 환율 방어, 자본 유출 억제, 통화 신뢰도 강화 등을 위해 취하는 접근이다.

2024년 상반기 콜롬비아 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환율이 과도하게 약세로 전환되자 기준금리를 추가로 0.25% 인상했다. 이는 미국 금리와 무관하게 자국 통화 가치 유지를 목표로 한 선제적 방어 조치였다. 결과적으로 콜롬비아 페소는 환율 안정을 회복했고, 외국인 자금 이탈도 억제되었다.

이 전략은 통화 정책의 신뢰성을 강화하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내수 경기 회복 지연과 민간 투자 위축이라는 부작용을 수반할 수 있다. 특히 가계부채가 많은 국가일수록 금리 추가 인상은 소비 여력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기준금리 동결기의 신흥국, ‘정적 선택’ 아닌 ‘능동적 대응’ 필요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가 ‘정지’ 단계로 전환되었을 때, 신흥국의 대응은 수동적 순응이 아니라 능동적 선택의 문제로 바뀐다. 기준금리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그 속에 담긴 신호와 국가별 맥락은 각기 다르다. 금리 동결 상태는 멈춘 것이 아니라, 더 복잡한 선택의 출발점이다.

이 글에서 살펴본 네 가지 시나리오 ― 보수적 동결 유지, 선제적 금리 인하, 통화수단 보완, 방어적 금리 인상 ― 는 모두 신흥국의 제약된 선택지를 보여주면서도, 각기 나름의 정당성과 위험을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외부 시그널에만 의존하지 않고, 내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입체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 속에서도, 신흥국은 자율적 통화정책의 실험실이 될 수 있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도 혁신적인 대응과 조합이 가능하며, 이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금리가 움직이지 않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판단의 민첩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