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준금리

일본의 장기 제로금리와 글로벌 기준금리 사이의 괴리

somillion-news 2025. 7. 12. 16:37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의 기준금리가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여기에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은행(BoE)이 주요 보조 축으로 참여하면서, 세계 대부분의 중앙은행은 이들 기축국의 통화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구조를 형성했다. 이른바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 현상은 이러한 구도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 흐름에서 일본은 예외를 만들었다. 일본은행(BOJ)은 1990년대 이후 장기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제로금리를 도입했고, 그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저금리 기조를 고수해왔다. 특히 2016년 이후에는 마이너스 금리와 수익률곡선 제어(Yield Curve Control) 정책까지 도입하면서, 일본은 글로벌 금리 흐름에서 명확히 이탈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장기 제로금리 정책이 어떻게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와 괴리를 일으켰을까?

 


일본의 통화정책, 왜 제로금리로 고착되었는가

일본이 장기 제로금리 정책을 채택하게 된 배경에는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와 장기 디플레이션 문제가 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붕괴한 이후, 일본 경제는 내수 부진과 고령화, 생산성 저하 등의 문제로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1999년 세계 최초로 ‘제로금리 정책(ZIRP)’을 시행했고, 이후 이를 유지하거나 심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개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일부 금리 정상화를 시도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다시금 저금리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2016년부터는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며, 명목 기준금리를 -0.1%로 설정하고 장기 국채 수익률을 0% 근처로 유도하는 수익률 곡선 제어(YCC) 정책을 가동했다.

이러한 정책 선택은 일본의 특수한 경제구조와 인구구성, 그리고 내수 위축에 따른 구조적 저성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로 인해 일본은 글로벌 기준금리가 상승 국면에 들어서도, 국내 여건상 금리 인상이 불가능한 ‘정책 이탈국’으로 남게 되었다.


미국과 유럽의 금리 인상기, 자금은 일본으로 몰렸는가?

2022년 미국 연준이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유럽중앙은행도 긴축 정책을 가속화하던 시기, 일본은 끝내 제로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금리 차이가 5%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지는 역사적 괴리가 발생했다. 이런 상황은 투자자들에게 뚜렷한 기회 비용의 차이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일부 자본은 엔화 자산에서 이탈하여 미국 채권으로 이동했으며, 일본 국내에서는 금리 차이를 이용한 해외 투자 확대 현상이 나타났다. 실제로 일본 기관투자자들은 미국 국채와 외화 자산 보유 비중을 확대하며 글로벌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했다. 반면, 일본 내 자산 시장은 과도한 금리 안정성과 엔저 압력으로 인해 매력이 떨어졌고, 이는 일본 은행권의 수익성 저하로 이어졌다.

또한 일본의 금리 동결은 글로벌 통화정책의 조율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과 유럽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동시에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일본이 동참하지 않으면서 글로벌 금리 공조의 균열이 현실화되었다. 동조화 체계에서 이탈한 일본의 존재는 시장의 예측력을 약화시키고, 다른 중앙은행들의 전략 수립에도 간접적인 혼란을 초래했다.


엔화 캐리트레이드의 부활과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

일본의 장기 제로금리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엔화 캐리트레이드 전략의 기반을 제공해왔다. 캐리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통화로 자금을 빌려 고금리 통화 자산에 투자하는 전략을 뜻한다. 예컨대 엔화로 자금을 조달한 후 미국 달러 자산에 투자하면, 금리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된다.

2022~2023년에는 일본의 금리 동결과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동시에 유지되면서, 캐리트레이드가 전례 없는 규모로 부활했다. 헤지펀드, 글로벌 투자은행, 연기금 등은 엔화를 조달 수단으로 활용해 미국 국채 및 기업채에 대거 투자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채권시장에는 막대한 외화 유입이 발생했고, 엔화는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이 구조는 금리 방향성이 반전될 경우, 급격한 자금 이동을 유발할 수 있는 ‘불안정한 평형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거나 엔화 강세 기대감이 커질 경우, 캐리트레이드의 청산이 시작되면서 글로벌 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에 노출될 수 있다. 이는 일본의 제로금리가 단지 자국 금융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리스크 확산의 매개체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이 동조화를 포기한 대가와 남긴 질문

일본이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에서 이탈한 선택은 국내적 안정을 추구하는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일본은행은 성장률 부진, 고령화, 디플레이션 압력 등 일본 고유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완화를 고수해왔다. 그러나 이 전략은 분명한 비용도 초래했다.

첫째, 일본 은행권과 보험사의 수익성은 낮은 금리 구조로 인해 장기적으로 악화되었고, 금융 시스템 내 불균형이 심화되었다. 둘째, 환율 왜곡과 무역수지 불균형이 심화되며 일본 내 소비자물가가 외부 금리정책에 의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현상도 발생했다.

셋째, 글로벌 투자자들은 일본의 통화정책을 예외적 사례로 인식하며, 글로벌 통화정책 공조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낮게 평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각국 중앙은행 간 협력체계 구축이 더욱 어려워졌고, 동조화의 틀은 균열을 피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금리 정상화를 시도할 때, 오랜 제로금리에 길들여진 경제 구조가 급격히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동조화 회복이 단기간에 이뤄지기 어려움을 의미하며, 일본의 독자 노선이 일시적 전략이 아닌 구조적 현실로 굳어진 측면이 있다.


글로벌 기준 금리 동조화 속에서 이탈한 이방인의 선택

동조화의 틀을 벗어난 일본, 새로운 통화 실험인가 외로운 방황인가

일본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의 틀에서 명백히 이탈한 몇 안 되는 주요국 중 하나다. 이탈의 이유는 단지 통화당국의 고집이 아니라, 구조적 불황과 인구구조, 내수 위축이라는 복합적 요인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다. 제한된 성장 잠재력 속에서 금리 인상은 스스로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본은행의 판단을 지배해왔다.

하지만 이 선택은 글로벌 금융 질서 속에서 괴리와 혼선을 낳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의 저금리는 자본 흐름 왜곡, 환율 불안정, 캐리트레이드 폭증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며, 다른 국가들의 통화정책에도 예기치 못한 외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동조화 체계에서의 이탈이 단지 ‘국가의 독립성 강화’로 끝나지 않고, 국제시장 전체의 조율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위험요소가 됨을 시사한다.

앞으로 일본이 언제, 어떻게 금리 정상화로 복귀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본의 장기 제로금리는 단지 자국의 선택을 넘어, 글로벌 통화질서에 깊은 균열을 만들고 있다. 이 괴리가 계속 유지된다면, 동조화 시대의 종말 혹은 새로운 질서의 전환을 의미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