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준금리

지역 통화 블록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를 대체할 수 있을까?

somillion-news 2025. 7. 21. 14:30

전 세계는 수십 년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특히 금리 변동은 미국이 시작하면 유럽, 아시아, 신흥국까지 도미노처럼 따라가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라 부르며, 그 구조는 자본의 초 국경적 이동성, 금융시장 통합,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기반한다. 하지만 이 같은 동조화는 각국의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 처방을 강요받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곧 대안을 찾게 만든다.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대안 중 하나가 ‘지역 통화 블록’이다. 이는 지정학적, 경제적 연계를 갖는 국가들이 공동의 통화정책 협력 체계를 만들어 글로벌 금리 동조화 흐름을 일정 부분 우회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한다. 과연 지역 통화 블록은 글로벌 기준금리의 영향력을 실질적으로 대체하거나 약화할 수 있는 구조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지역통화블록 vs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

유로존의 사례 - 금리 공동체의 가능성과 한계

유럽연합은 가장 대표적인 지역 통화 블록 실험으로 꼽힌다. 유로존은 유럽중앙은행(ECB)을 중심으로 통합된 통화정책을 시행하며 독자적인 금리결정권을 행사한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달러 금리의 변동에 따라 즉각 반응하기보다 ECB의 판단을 따르며 상대적으로 자율적 금리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2년 미국이 고강도 금리 인상을 단행했을 당시, ECB는 유로존의 경기 침체 우려를 고려해 일정 기간 대응을 유보하였다. 이는 유로화 블록이 하나의 통화로 묶여 있기에 금리 결정에서 내부 사정을 우선시할 수 있었던 결과이다. 하지만 동시에 유럽 내부에서도 스페인과 독일처럼 경제 구조가 다른 나라들이 같은 금리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정책 비효율성도 존재한다. 즉, 지역 통화 블록은 글로벌 금리 영향에서 부분적 독립성을 부여하지만, 구성국 간 동질성 부족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아시아 통화 블록 논의와 현실적 제약

아시아는 경제 규모 면에서 이미 세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통화 정책 면에서는 여전히 미국 금리의 동조화 경로에 강하게 종속돼 있다. 일본, 한국,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이 미국 금리와 거의 동조되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에서, 지역적 협력을 통한 통화 블록 구축이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논의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는 일종의 통화 협력 메커니즘으로 출발했으나, 실질적인 공동 금리 정책을 도입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 각국 중앙은행이 독자적 통화정책을 선호하고 있으며, 정치적 신뢰 기반도 미비한 상황이다. 예컨대, 한국과 일본은 외교적 마찰로 인해 금융통합 논의가 중단된 적이 있었고, 중국은 자국 통화 위안화를 블록 내 기준통화로 삼고 싶어 하지만 주변국들의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통화 블록의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공동 기준금리 또는 통화안정기금 등 협력 구조가 정교화된다면,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의 압박을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탈달러 움직임과 통화 블록 실험

최근 브릭스(BRICS)나 남미 국가들 사이에서는 ‘탈달러화’ 흐름과 더불어 지역적 금리 정책 논의가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중남미에서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공동 통화 ‘수르(SUR)’ 발행을 추진했으며, 이를 통해 환율 및 금리의 독립적 운용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로 브라질은 2021년~2023년 사이 미국과 반대로 조기 금리 인상을 단행했고,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 IMF의 요구보다 느린 금리 조정을 했다. 두 국가는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를 무시하고 자국 상황에 맞춘 결정을 내렸지만, 금융시장 불안과 통화가치 급락 등의 부작용도 동시에 겪었다. 이는 지역 통화 블록 또는 공동 대응이 있었더라면 보다 안정적인 결과를 유도할 수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프리카에서는 서아프리카 경제통화연합(UEMOA)이 프랑스와의 금융 연결을 탈피해 ‘에코(Eco)’라는 통화를 추진 중이다. 이 통화가 안착 경우 서아프리카 지역은 미국 금리와 유럽 금리의 영향에서 일정 부분 독립적으로 금리결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블록화가 금리 독립성에 주는 구조적 조건들

지역 통화 블록이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핵심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거시경제의 유사성이다. 예를 들어 물가, 성장률, 재정 상태가 큰 차이를 보이는 국가들이 동일 금리를 채택할 경우 불균형이 초래될 수밖에 없다. 둘째는 정치적 신뢰와 제도적 통합이다. 중앙은행 독립성과 공동 의사결정 절차에 대한 합의 없이는 블록 내부의 금리 결정이 흔들릴 수 있다.

셋째는 공동 외환 방어 메커니즘이다. 지역 통화 블록이 글로벌 기준금리와 다른 노선을 택할 경우, 자본 유출이나 환율 불안정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방지하려면 통합된 외환기금이나 공동 채권 발행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되면, 지역 통화 블록은 단순한 통화협력을 넘어 자체 기준금리 체계를 구축할 수 있으며, 글로벌 금리 동조화의 대안을 현실화할 수 있다. 유럽 외에도 장기적으로 아시아나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도 이런 조건이 마련될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가능성은 열려 있으나, 제도적 기반이 우선

지역 통화 블록은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로 인한 정책 종속성 문제를 일부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로존은 그 가능성을 일정 부분 보여주었고, 아시아와 중남미에서는 논의 수준에 따라 실현 가능성의 차이가 존재한다. 통화 블록이 제 기능을 하려면 정치적 신뢰, 거시경제의 수렴성, 제도적 기반 구축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 반드시 충족돼야 한다.

글로벌 경제가 점점 다극화되는 시대에 지역 통화 블록의 실험은 단순한 통화정책 수단을 넘어서 금융 주권 확보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기준금리 동조화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국가들은, 장기적 안목에서 자국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협력 체계 구축을 검토할 시점에 와 있다.